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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섭 <1960-70년대의 한국 전위미술>

Critique 평론 2006.10.21 00:38
과천이전 20주년 기념 온라인 학술행사 '한국미술 100년'


1960-70년대의 한국 전위미술

윤진섭(미술평론·호남대 교수)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1967년이 지니는 의미는 각별한 데가 있다. 이 해에 ‘현대미술실험전’이란 타이틀을 내 건 제2회 [무동인전](6.27-6.26, 중앙공보관화랑)에 일상적 사물을 주재료로 한 입체작품들이 대거 등장했기 때문이다. 1)
당시 한국의 미술계는 1957년에 <현대미술가협회>의 창립을 기점으로 발화한 앵포르멜의 열기가 쇠잔해지고 있을 때였다. 1930년대 출생의 작가들이 주도했던 앵포르멜은 6.25전쟁이 남긴 정신적 상흔과 혹독했던 전쟁 체험을 바탕으로 생성된 미술운동이었다. 그러나 약 1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비정형에 뿌리를 둔 앵포르멜은 더 이상 진전시켜 나갈 수 있는 미술운동으로서의 명분이나 조형적 에너지를 보여주지 못했다. 이때를 틈타 새롭게 등장한 것이 바로 오브제와 설치였다. 그 배경이 되는 1960년대 중후반의 사회적 상황은 소위 ‘조국 근대화’로 일컬어지는 경제개발 우선 정책에 의해 소비가 증가하고 있었으며, ‘바캉스’ 붐이 일고 있었다 2)

<무동인>이 선도했던 일상적 오브제의 등장은 이러한 사회적 여건이 조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당시 제2회 [무동인전]에 출품했던 최붕현의 <<인간2>>에는 맥주병과 플라스틱 1회용 컵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는 대중 소비사회의 맹아를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대중 소비사회의 일면을 보여주는 본격적인 작품의 등장은 같은 해에 열린 [청년작가연립전]3) (1967.12.11-12.16, 중앙공보관 화랑)에 이르러서였다. <무동인>, <신전동인>, <오리진> 등 홍익대 출신의 3개 그룹이 연립전 형식으로 연 이 전시회에 정강자의 <<키스 미>>, 심선희의 <<미니1>>과 같은, 당시의 유행 현상을 반영하는 작품들이 대거 등장하게 된 것이다. 입술을 크게 확대한 정강자의 <<키스 미>>에는 선글라스를 쓴 여성의 두상이 보였으며, 심선희의 작품은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미니스커트로 대변되는 여성의 복식을 소재로 한 것이었다.

<무동인>과 <신전동인>에 의해 주도된 입체와 설치, <오리진>이 주도한 기하학적 추상의 대두는 당시의 화단에 새로운 감수성과 매체로 무장한 신세대의 등장을 예고하는 신호탄이었다. 그것은 또한 신구세대간 갈등의 첫 출발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이 전시를 기점으로 오브제 미학에 바탕으로 둔 <A.G>(1969년 결성, 1970년 창립전 개최), <S.T 조형예술학회>(71년 제1회전 개최, 국립공보관)와 같은 전위적 실험 그룹이 태동을 보였기 때문이다. 오브제와 설치는 ‘탈 평면’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기하학적 추상은 격정적 내지는 주정적인 추상표현주의의 틀에서 벗어나 엄격한 화면 구성을 의도했다는 점에서 앵포르멜 세대의 화풍과는 매우 대조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등장하는 많은 전위적 실험미술 집단의 활동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에는 흑백 단색화(Dansaekhwa)의 경향이 일종의 붐처럼 일어나게 되는데, 이는 미협의 헤게모니 장악을 통한 앵포르멜 세대의 재등장을 의미하는 것이다.4)

[청년작가연립전] 동인의 대두는 한국 미술계에 오브제와 설치, 퍼포먼스의 등장을 알리는 공식적인 첫 신호탄이었다. 그것은 회화와 조각이라는 본질적인 미술의 영역을 떠나 비예술적인 사물과 사건을 제시함으로써 ‘예술과 일상’의 혼융을 통해 '총칭적인 예술(the generic art)' 5) 의 개념 속에 포섭되는 것으로 해석된다. 가령 이태현의 <<명2(命2>>(1967)의 경우, 그가 제시한 검은색 고무장갑은 가공을 하지 않은 기성품(ready-made)이다. 이 작품은 마르셀 뒤샹의 자전거 바퀴나 변기처럼 회화의 역사적 문맥에서 이탈해 있다. <오리진> 6) 그룹을 제외한 <무동인>과 <신전동인>이 관심을 기울인 각종 기성품, 소음, 해프닝 등등은 회화에서의 ‘질(quality)’이나 ‘예술적 완성도’와 같은 미적 판단 기준이 아닌 비(非)미적인 기준들, 즉 사회, 정치, 경제적 상황에 의거하여 해석될 필요가 있다.

나는 [공간의 반란]을 계기로 전후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오브제와 설치, 퍼포먼스가 차지하는 위상과 계보를 통시적으로 재구성하고자 시도하였으며, 2000년에 출간된 저서를 통해서는 전위(avant-garde)의 입장에서 본 미술운동사의 측면에서 이 문제를 다루고자 하였다. 7) 1909년, 고희동이 유화를 배우기 위하여 도일한 이래, 일제시대와 6. 25전쟁을 거쳐 “한국의 현대미술사에 비쳐볼 때 신세대 작가들이 위치하는 맥락은 앵포르멜 세대의 그 것보다는 60년대 후반에 활동을 보이다 해체돼 버린 [청년작가연립전] 세대, 다시 말해 4. 19 세대의 실험적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앵포르멜 작가들이 아방가르드 정신에 충일 해 있었으면서도 캔버스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했던 것에 비해 ‘무동인’과 ‘신전동인’으 로 대변되는 당시의 신세대 집단은 ‘타블로’ 밖의 매체들, 곧 오브제를 비롯한 각종 전자 매체들과 해프닝, 보디페인팅 따위의 신체 미디어에 주목하였기 때문이다. 60년대 중후반 의 ‘무동인’과 ‘신전동인’의 실험정신과 전통은 70년대의 모더니즘-흑백 단색조회화로 대 변되는-의 진행과정에서 새로운 신세대의 출현으로 계승되지 못하는 불운을 겪는다. 그렇 다면 최근 들어 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신세대 작가 내지는 그룹들은 ‘무동인’과 ‘신전동 인’, ‘오리진’과 같은 과거 60년대의 실험집단의 적자들인 셈이다.” 앵포르멜에 이르는 60여 년에 걸친 회화의 역사에 대해 그것에 대한 저항적 행위로서의 <무동인>과 <신전동인>의 최초의 반란에 주목해 보고자 했던 것이다.8)최근 몇 년간에 걸쳐 시도된 이 시기(1960년대 후반-70년대 후반)의 미술에 대한 연구 성과와 전시기획 9) 은 당시의 실험미술을 회고함으로써 그 의미를 재정립하려는 일련의 움직임들이다.10)

[청년작가연립전]에서 발원하여 <논꼴> 11) <회화68> 12) <A.G>, <S.T>, <신체제> 등등 다양한 실험미술 집단이 태동되기 시작한 19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반에 이르는 활동 공간은 앵포르멜 세대의 잠복기였다. 앵포르멜 세대의 재등장은 1970년대 초반 미협에의 진출과 깊은 연관을 갖는다. 그 중심에 박서보가 13) 있었다. 소위 ‘단색화’ 14) 중심의 앵포르 멜 세대의 부상은 화단의 헤게모니 장악과 깊은 관계가 있었다. 김복영은 이 일련의 투쟁과정을 전쟁세대(앵포르멜 세대)와 전후세대(A.G 세대) 간의 각축으로 파악하고 결과적으로 전후세대의 전쟁세대에 대한 굴복으로 보았다. 15)
1970년대 초중반을 기점으로 일제 반격을 가한 앵포르멜 세대의 화단 내 확고한 거점 확보와 이들에 의한 전후 및 4. 19 세대의 흡수 통합 16) 은 ‘문화권력화’의 현상을 초래하였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1975년 [에꼴 드 서울]의 창립과 같은 해에 있었던 [A.G]의 해체다. 1975년 [A.G]의 해체전에는 하종현, 이건용, 신학철, 김한 등 네 명만이 참가한다. 한편, 같은 해에 발족한 [에꼴 드 서울]에는 김구림, 김동규, 김용익, 김종근, 김홍석, 박서보, 박석원, 서승원, 송정기, 송번수, 심문섭, 엄태정, 이강소, 이동엽, 이반, 이상남, 이승조, 이향미, 정찬승, 최대섭, 최명영, 최병찬, 한영섭 등인데, 이 중에서 [A.G] 회원은 김구림, 김동규, 박석원, 서승원, 심문섭, 이승조, 송번수, 최명영 등이며, 하종현은 이듬해에 열린 2회전부터 참여하게 된다. 이 명단에 당시 첨단의 전위단체였던 [S.T]의 회원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17)

[에꼴 드 서울]이나 [서울현대미술제]와 같은 대형 전시회는 소그룹 운동을 무력화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당시 국제전 참여작가 선발을 겸한 [앙데팡당]전 등 미협이 주도한 대규모 전시회의 개최와 소그룹의 해체 사이에는 모종의 연관관계가 있어 보인다. [파리비엔날레], [상파울로비엔날레], [카뉴국제회화제], [인도트리엔날레] 등 세계 유수의 국제전 참가와 관련하여 선정권을 쥐고 있던 미협의 당시 위상을 상기해 볼 때 이는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 18)


1) 이에 대한 보다 상세한 내용은 김미경 저, 한국의 실험미술, 2003, 시공사, 31-41쪽을 참고할 것.

2) 제2차 경제개발5개년 계획이 공표된 때는 1966년. 이 해 5월 31일에는 외환보유고가 3억을 돌파하였으며, 5월 3일에는 제6대 대통령선거를 실시 박정희 후보가 110만표 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해에 바캉스 붐이 일기 시작했고, 미니스커트가 유행 했다. 히트곡은 <안개>, <가슴아프게> 등등. (개항100년 연표자료집, 신동아 1976년 1월호 별책부록)

3) [청년작가연립전]에 참여한 단체와 멤버는 다음과 같다.
<무동인>:김영자, 문복철, 임단, 이태현, 진익상, 최붕현.
<신전>동인:강국진, 김인환, 양덕수, 심선희, 정강자, 정찬승.
<오리진>동인:김수익, 서승원, 신기옥, 이승조, 최명영.

4) 흑백 단색화(Dansaekhwa)의 등장과 확산은 [에꼴 드 서울](1975년 창립), [앙데팡당전](1972), [서울현대미술제](1975), [대구현대미술제](1974) 등등 대규모 전시회를 통해 이루어졌다. 당시 활동했던 단색화 작가로는 박서보, 정창섭, 권영우, 윤형근, 정상화, 김종근, 하종현, 윤명로, 김홍석, 최대섭, 서승원, 최명영, 박장년, 김진석, 이동엽, 허황, 최병소, 김용익, 진옥선, 이상남 등등이다.

5) 이 개념과 관련된 상세한 논의는 Thierry de Duve의 “The Monochrome and Blank Canvas"를 참고할 것. 출전:Thierry de Duve, <Kant after Duchamp>, October, The MIT Press, 1998. pp. 199-279.

6) [청년작가연립전]에 참여한 그룹 중 회화를 추구한 유일한 단체는 <오리진>이었다. 당시 <오리진> 멤버들은 기하학적 추상을 시도하였다.

7) 전후 한국의 현대미술을 형성한 두 줄기의 대강, 즉 추상회화와 입체, 설치, 퍼포먼스가 중심을 이루는 ‘탈(脫)캔버스’ 운동의 계보를 살펴보고자 한 것이 본인의 저서 <한국 모더니즘 미술연구>의 집필 목적이었다. 앵포르멜 세대들이 70년대의 단색화 운동을 통해 회화의 복권을 시도했던 반면, 60년대 후반 이후에 등장한 신흥세력은 오브제와 설치, 해프닝과 같은 신매체를 통해 신세대적 감수성을 보여주었다. 당시의 이 신세대 운동과 1990년대에 발흥한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은 같은 역사적 계보를 형성한다.
 
8) 이 부분에 대해서는 윤진섭, <공간의 반란-한국의 입체, 설치, 퍼포먼스 1967-1995>(’95미술의 해 조직위원회 간, 미술문화, 1995) 중에서 ‘Part Ⅰ:태양의 반란-변혁과 실험의 모색기’에 수록된 글들을 참고할 것.

9) 이의 대표적인 경우로는 국립현대미술관 기획의 [한국현대미술의 전개:역동과 전환의 시대]를 들 수 있으며, 연구성과로는 김미경의 <1960-70년대 한국의 실험미술과 사회(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박사학위 청구논문), <한국현대미술다시읽기Ⅱ>(한원미술관) 세미나와 전시, 그리고 윤진섭의 <한국 모더니즘 미술연구>(도서출판 재원, 2000) 등을 들 수 있다.

10) 그러나 과거의 미술을 대상을 한 전시기획은 과거를 바라보는 하나의 시선에 지나지 않는다. 거기에는 전시기획자의 관념화된 혹은 고착된 시선이 개입될 여지가 없지 않으며, 특히 기획자가 당시 역사적 현장에 있지 않았을 경우 국외자의 시선에 의한 전시는 늘 논쟁의 불씨를 간직하기 마련이다. 그러할 경우 논쟁은 작품의 재현을 둘러싼 리얼리티의 문제를 비롯하여 불확실한 정보에 의한 사실의 왜곡이나 텍스트에 스며들 수 있는 사실(史實)의 신빙성 여부를 둘러싸고 전개된다. 이 문제는 미술사 서술에도 영향을 미쳐서 가령 작가나 미술관계자들이 행하는 아리송한 기억에 의존한 부정확한 증언이나 자기중심적인 왜곡된 발언(가령 작품 제작 년대를 조작하는 경우) 등등은 구술사가 가지고 있는 맹점 가운데 하나다. 그렇기 때문에 보다 완벽을 기하지 않는 한 전시기획자의 기획은 자칫하면 도그마에 빠질 위험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시기획은 과거를 현재에 연결시킴으로써 현재를 보다 의미 있고 풍성한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큰 가치를 지닌 문화적 행위인 것이다.

11) 1964년 당시 홍대 졸업반이었던 강국진, 정찬승, 한영섭, 김인환, 최태신, 양철모, 남영희 등이 결성한 전위그룹, 이들은 회지인 ‘논꼴아트’를 발간하고 세 차례의 전시회를 개최하는 등 나름대로 전위미술 운동을 펼쳤으나 조직에 한계를 보여 <신전>의 결성과 함께 해체되었다.

12) 동인은 김구림, 김차섭, 곽훈, 박희자, 유부강, 이자경, 차명희, 하동철, 한기수 등. 학연을 통한 연대의식보다는 독립적인 작가의 개성이 두드러진 단체.

13) 박서보는 1970년부터 1977년까지 미협 국제담당부이사장을, 1977년부터 1980년까지 이사장을 역임하는 동안 [앙데팡당](1972), [에꼴 드 서울](1975), [서울현대미술제](1975) 등등 대규모 미술제를 창설하였다. 그 중에서 특히 [앙데팡당전]은 파리 비엔날레 참여작가 선발을 겸하고 있어서 미술인들의 관심이 높았다.

14) 70년대 초반에서 80년대 후반을 거쳐 지금도 뿌리 깊게 이어져 ‘포스트 단색화’ 군을 형성하고 있는 이 특정한 회화 경향을 지칭하는 용어는 논자에 따라 다양하다. ‘단색화’, ‘단색조 회화’, ‘단색조 평면 회화’, ‘모노크롬 회화’, ‘모노톤 회화’ 등등이 그것이다. 나는 2000년[광주비엔날레]의 특별전인 [한일현대미술의 단면전] 도록에서 ‘단색화(Dansaekhwa)’로 표기한 바 있으며, ‘한국현대미술다시읽기Ⅱ’ 워크숍(2001. 9. 15)에서 이 특정 경향을 고유 브랜드화 할 것을 제안, ‘단색화(Dansaekhwa)’로 표기한 바 있다. 이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한국현대미술다시읽기Ⅱ-6, 70년 대 미술운동의 자료집 Vol.2>>, ICAS, 2001, 415-7쪽 참고.

15) 김복영, ‘타자로서의 사물에 대한 응시, ‘S.T’의 신화, <<월간미술>>, 2005년 2월호, 58쪽. 한편, 이 문제와 관련된 필자의 견해는 “윤진섭, 복원(復元 1960-70년대 전위미술, 2001. 10. 13, <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 Ⅱ-6,70년대 미술운동의 자료집 Vol.2>, 490-2쪽”을 참고할 것.

16) 이 흡수 통합의 양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1970년대 중반 당시 [에꼴 드 서울]을 비롯하여 [서울현대미술제], [앙데팡당]전에서 이루어졌던 디스플레이 방식이다. 당시 이 전시회들은 국립현대미술관(덕수궁 석조전) 전관에서 열렸는데, 대개 1층 1실에 흑백 단색화들이 걸렸고 나머지 공간을 하이퍼리얼리즘 회화, 오브제, 개념미술, 설치작품들로 채웠다.

17) 윤진섭, 복원(復元) 1960-70년대의 전위미술, 490-1쪽.

18) 김달진, 국제전 출품과 시비, <바로 보는 한국의 현대미술>, pp. 56-57 쪽 참고.
“우리의 현대미술이 해외에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말이며, 국제전은 60년대 들어 본격화되었다. 61년 파리 비엔날레 참가를 시작으로 63년 상파울로 비엔날레, 71년 인도 트리엔날레, 81년 방글라데시 비엔날레, 86년 베니스 비엔날레 등이 있다. 그 동안 가장 많이 참가한 국제전은 상파울로 비엔날레 15번 연인원 158명, 카뉴국제회화제 21번 87명이다. 미협을 통한 국제전의 참가는 한국 현대미술을 주도했던 작가들로 작품은 추상계열이었다. 1960-70년대 파리 비엔날레, 상파울로 비엔날레, 카뉴 국제회화제, 인도 트리엔날레 출품작가와 69년 국제현대회화 비엔날레(이탈리아), 국제청년미술가전(일본), 78년 국제현대미술전(프랑스)을 넣어 출품 및 커미셔너 참가를 빈도표로 조사해 보았다. 그 결과 박서보 10번, 김창렬, 심문섭, 이우환, 하종현, 7번, 서승원, 윤명로, 정영렬, 조용익 6번, 서세옥, 윤형근, 정창섭, 최만린, 최명영 5번씩 14명인데 같은 국제전에도 파리 비엔날레는 심문섭(71, 73, 75), 조용익(61, 67, 69), 최만린(65, 67, 71), 카뉴 국제회화제는 박서보(69, 74, 77), 정영렬(70, 75, 77), 상파울로 비엔날레는 김창렬(65, 73, 75)이 세 번씩 참가했으니 불만이 나올 만도 했던 것이 짐작이 간다. 국제전하면 으레 추상으로 국한되고 ”국제전에 참가하려거든 먼저 미협 간부가 되라는 속언이 생겨났다.“

19) 윤진섭, 복원(復元) 1960-70년대의 전위미술, 491-2쪽.

20) 미협 행정과 관련된 여러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70년대 초반에서 후반을 거쳐 현재에 이르는 단색화적 경향의 정착과 확산은 이 시기의 미술이 거둔 성과 가운데 하나다.

21) 윤진섭, 앞의 글, 4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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