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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화가 이동엽 & 미술평론가 김현도 <동녘과 서편, 그 사이>

Philosophy 철학 1992.03.07 08:17
동녘과 서편, 그 사이

대담자: 이동엽(화가), 김현도(미술평론가)

일시: 1992년 3월 6일
장소: 공간사 회의실




김현도 : 제가 선생님 그림 「사이(間)」를 처음 본 것은 88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의 「한국 현대미술의 흑과 백전」이었습니다. 그 때 저는 비로소 동양학에 관심을 두고 있었는데, 주역에서 읽었던 「흰 띠를 편다. 허물이 없을 것이다.」 선에서 말하는 「他成一片(타성일편)」 - 두드려서 한 조각을 이룬다. - 등의 명제들에서 느꼈던 신선함을 선생님의 작품에서 발견한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사이」를 시작한 동기와 배경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지요. 그 제목으로 시작하신 것은 언제부터였습니까?

이동엽 : 「사이」를 시작한 것은 80년경이었습니다. 그 이전의 70년대에는 「狀況(상황)」시리즈를 했습니다. 「虛(허무)」와 「常(무상)」이라는 세계상을 했는데, 형태는 무상성을 추구했습니다. 거의 백색작업이지요. 저는 제1회 앙데팡당전으로 데뷔하기 이전부터 (무)색에 대한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 사고가 사유화 됐다고 할까, 거의 직관적으로 도달한 색이었습니다. 터무니없는 관념성으로 출발했다기보다 내가 살아온 현실의 혼란, 어둠, 이 나라의 역사적 과도기로부터 인간이라는 문제를 생각했고 그런 한계, 모순을 뛰어넘고 치유할 수 있는 과제가 자연의 문제로 돌려졌습니다. 자연은 문명에 반대되는 개념, 문명의 폐단에 대한 출구로 생각되었습니다.

김 : 관념성이라기보다는, 체험으로 느껴진 자연을 말씀하시는 것인가요?

이 : 그것은 개인적인 문제인 동시에 인간의 보편적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그 시대의 문명, 사회에 대한 비판적 성격 등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이고, 반성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를 다시 돌아보면서 인간은 어디서부터 왔고, 어떤 존재이며, 인간과 인간의 참다운 관계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의 돌파구를 자연에서 찾았던 것입니다.

김 : 당시의 암울했던 현실에 대한 대위개념으로서의 자연, 그것을 추상화하는 방법이라고 볼 수 있겠군요.

이 : 비약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인간이라는 존재의 문제를 본질적인 면에서 되돌아봤을 때 어디서부터 출발하고 어떻게 현상되는가 하는 그런 전모를 생각하게 된 것이지요. 그런 면에서 존재의 근원지로서 생각하게 된 것이 백색이었습니다. 나는 그것을 「(무)의 지대」라고 명명했습니다. 「(무)의 지대」는 정신과, 물질의 현상 어디에나 있는 존재의 모태라고 생각했습니다.

김 : 체험적으로 자연을 채택, 추상화하여 백색이 되는 관념을 거치신 것이군요.

이 : 그렇지요. 우리가 보는 자연은 가시적인 한계에 머물러 있고 자연 너머 보이지 않는 근원까지 추적을 하다 보니 「(무)의 지대」를 채택하게 되었습니다.


김 : 제1회 앙데팡당전에 출품했던 작품은 어떤 작품이었습니까?

이 : 70년부터 바탕을 흰색으로 했는데, 윤곽만 형태화하면서 「컵」시리즈를 제작했습니다.

김 : 「컵」이 등장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 : 자연의 현상, 존재의 현상을 「컵」이라는 형태에서 찾았습니다. 「컵」이 우주의 그릇이라면 얼음은 거기에 나타나는 존재로 설정될 수 있습니다. 「컵」과 물에서 「컵」속의 얼음이 녹고, 녹아서 증발되면, 비게 되는 이런 현상을 통해서 존재의 가변성 내지 무상성을 제시해 보았습니다.

김 : 은유적인 동시에 부분으로 전제를 담아 내고 있다는 면에서 환유적이라고 보입니다.

이 : 우주현상 내지는 인간의 모든 문제들을 그런 현상으로써 현상화, 함축화했습니다.

김 : 그 이후에는 형상이 없어졌지요?

이 : 좀 더 구체적인 형태가 없어지고 형태를 이루는 것은 형태의 특징이랄까, 속성이었습니다. 그것은 대체로 두 가지로 구분되는데 유기적인 것과 무기적인 것입니다. 무기적인 형태는 고정되고 안정된 것이고 유기적인 형태는 흐르고 움직이는 속성을 가진 것입니다. 이 두가지, 즉 움직이는 것과 고정된 것이 서로 상응하면서 반응하는 이러한 현상태를 두가지 성격으로 그려내려고 했습니다.

김 : 형태자체를 유기적, 무기적이라고 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우리가 피상적으로 생각하는 형상 개념과는 다른 것이군요.

이 : 그렇지요. 그 속성상 부드러운 형태, 딱딱한 형태, 두가지 성격으로 우주를 생각해 본 것입니다.

김 : 앙데팡당전 얘기로 돌아가서, 선생님께서 제1회 수상자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 1회 앙데팡당전 (부제: 파리비엔날레, 국내작가 선정 공모전) 때 입체와 평면이라는 양식상의 구분이 처음 있었습니다. 거기서 평면 1석을 했습니다.

김 : 그 때 심사위원은 누구이셨습니까?

이 : 재일교포 작가 이우환 선생이 단독심사를 했습니다.

김 : 그 이후, 이른바 백색 모노크롬 회화라고 명명이 된 운동 아닌 운동이 일본에 알려져 거기서 전시회가 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 : 앙데팡당 당시에 일본의 동경화랑 관계자들 - 화랑대표, 미술평론가 나까하라 유스께 - 이 왔었습니다. 그 후에 백색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싹트면서 국내에 확산되고 그 결실의 하나로 75년 동경화랑에서 백색 5인전이 열렸었습니다.

김 : 그 때 참여작가들은 누구셨지요?

이 : 권영우, 박서보, 서승원, 허황 선생님 그리고 저였습니다.

김 : 당시 작업은 「(무)의 지대」였습니까?

이 : 그렇지요. 백색작업이었습니다.

김 : 그 백색이 아까 선생님이 말씀하신 경험적 현실에서 대위개념으로 등장하는 자연을 다시 평면 속에서 환원한 색채라고 볼 수 있겠군요.

이 : 그렇습니다.

김 : 그 때가 75년이라 하셨는데, 당시라면 일본에서 「모노」파 운동이 진행되었었고 구미에서는 미니멀리즘, 모노크롬 계통의 작업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것들이 어우러져 국내에서도 상당히 영향력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 60년대에서 70년대 초까지 국내상황은 서구양식을 두서없이 도입하는 시기였습니다. 말하자면 본격적인 모더니즘의 이론적 연구나 정립이 되어있지 않은 상태의 과도기였습니다. 60년대 말에 A.G를 통해 일본 모노파 개념의 작업들이 다투어 받아들여져서 비교적 대규모로 작업화됐습니다.

김 : 「모노」(物)파라 하면 서구 미니멀리즘과의 유사성이 있기도 하지만 사실상 입체라는, 기존의 조각이나 회화도 아닌 매개물을 통해서 어떤 관계 개념이랄까, 새로운 인식방법을 들고 나왔습니다. 당시「모노」파 운동과 선생님 작업은 굳이 연관성을 가지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는데...

이 : 당시 나는 학생이었고 「모노」파에 대한 인식은 거의 없던 때였습니다. 다만 미술수첩을 통해 한두 작가의 작품을 본 경험정도 밖에 없었습니다.


김 : 선생님의 작업에는 초기부터 형상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무)의 지대」에서 「컵」을 그릴 때나 「사이」로 넘어올 때도 항상 어떤 무엇을 그려 보이려는 욕구가 깔려있다고 보이는데요.

이 : 그 당시 회화가 평면화되어서 평면구조로 되는 과정을 얼핏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내 생각엔 그것이 회화의 종말이 아닌가 하는 우려와 함께 「다시 그려보겠다」, 「평면으로 환원된 회화로부터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거기에는 그림이란 것을 새로운 방법과 형식으로 제시해 보겠다는 의도가 강하게 있었습니다.

김 : 사실상 선생님 그림은 「모노」파라든가 미니멀리즘의 개념성보다는 동양 전래의 수묵, 문인화의 정신과 유사성을 갖는 것 같습니다. 그 당시의 서구적 개념으로 볼 때 모더니즘 회화는 평면에서 일루젼(illusion) 요소를 제거하려 시도했었고 그런 점에서 필연적으로 형상이랄까 형태가 사라지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그림에의 욕구도 말씀하셨지만, 선생님 작업은 어떤 평면성을 의식하고 그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 저는 화면이라는 것, 그것을 이루는 평면이라는 것이 면으로 인식되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사고의 場(장)으로서의 공간입니다. 전통 산수나 문인화 말씀을 하셨는데 전통화면을 봤을 때, 표현된 부분과 표현되지 않은 부분에서 표현되지 않은 부분은 거의 여백으로 남겨두었다는 사실이 무엇을 말하는가, 그 여백이 그림을 그리는 소지로서의 지면에 불과했을까 의문이었습니다. 그것은 동양인의 독특한 공간개념이었습니다. 「여백을 남겨둠으로써 공간을 규정하지 않고 오히려 공간을 넘어서는 무차원의 공간을 제시하지 않았는가」, 「무차원의 공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원초적인 공간이 아니었겠는가」와 같은 개념을 유추할 수 있었습니다. 즉 서구와는 다른 동양의 직관적 공간입니다.

김 : 문인화에 나오는 書畵同體(서화동체) 같은 개념들과 선생님 「사이」작업은 상당히 유사성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이 : 그런 문제는 작업과정에서 차츰 공감, 자각을 하는 면이 있었습니다.

김 : 사실 어떻게 보면 繪畵(회화)라는 것 자체가 어원상 「繪」라는 것이 「칠한다」는 「면적」인 개념이고, 「畵」라는 것을 「긋는다」는 「선적」인 개념으로 구분해서 설명하려는 성향이 있습니다. 그 점에서 보면, 선생님 작업은 「칠한다」는 면적 개념보다 선적 개념을 구현한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이 : 공감합니다. 그린다는 것은 뭔가 묘사한다는 한정을 갖습니다. 그린다기보다 긋는다는 것이 그림을 그리는 가장 일차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제 경우에는 그린다는 것이 線(선)이자 形(형)이자 像(상)이라는 개념을 추구합니다.

김 : 존재론적 場(장), 소우주로서의 화면을 대면한다는 말씀이신가요.

이 : 제 경우 존재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 : 그 당시 시대적 배경으로 돌아가서, 사실상 국내에서는 백색 모더니즘, 미니멀리즘이 성행했었고, 서구적 미니멀리즘과 선생님 작품이 유사성을 보인다고 할 때, 미니멀리즘에 있어서의 주체개념, 그러니까 작가로서의 주체개념과 선생님 작업상의 교차지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이 : 일부 공통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미니멀에서 주체성을 배체해 버리는 그런 점은 일부 상통합니다. 주체가 주체로서 세계를 규정할 수 없다는 개념이 내게도 있는데...

김 : 앞서 말씀하신 자연 개념과 연관될 것 같습니다.

이 : 존재세계란 主(주)와 從(종)의 관계가 아니라는, 수평적 관계를 설정할 수 있습니다. 가치에 있어서도 등가적 가치의 존재가 아니겠습니까.

김 : 선생님 작품에서는 대상과 나라는 이원론적 개념, 환원해서 말하면 주체와 객체를 분리시킨 것이 아니고 자연과 일체화시켜서 본다는 것인데, 그 관점이 고대 동양의 자연관과 통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사이」라는 제명을 붙여서 백색작업을 견지해 오시는 것과의 연관관계는 어떻게 보십니까?

이 : 아까 말씀드렸듯이 「사이」라는 명제가 등장한 것은 80년경이었습니다. 화면 속에 보다 합일되는 「화면」과 「나」가 전혀 분리될 수 없다고 하는 그런 구조를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김 : 「사이」라는 개념이 공간적 틈새나 시간적 간격을 얘기하는 것이 아닌지요?

이 : 「사이」라는 것은 물리적 공간의 거리나 시간이라는 물리적인 면 외에 비물리적 관계에도 작용하는 의미입니다. 저는 비물리적 관계나 구조로서의 「사이」를 추구했습니다.

김 : 비물리적 구조를 더 강조하시는 것입니까?

이 : 세계라는 것은 드러나기도 하고 드러나지 않기도 하는 양면, 지각대상이자 지각을 넘어선 대상일 수도 있는, 두 성질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 작품에는 물리적인 것과 비물리적인 것 양자가 같이 드러납니다.

김 : 감상자 편에서 선생님 작품을 보면 백색 바탕에 붓자국이 희미하게 나타나고, 붓자국 사이에 아주 미세한 틈새가 드러나는, 기존의 그림개념과 벗어나는 면이 있습니다. 현상적으로 얘기하면 선생님이 붓질을 하시고 칠해진 색감 사이에서 나타난 그 「사이」가 결국은 아까 말씀하신 백색의 여백이랄까, 남겨져 있고 머물러 있는 공간에로 통하는 틈새같은 것이 될 수 있겠습니다. 틈새를 통해 色界(색계)를 넘어서는 - (무)라고 말씀하셨는데 -, 「(무)의 지대」로 나아가는 것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이 : (무)와 有(유)가 넘나드는 것이지요. 그런데 왜 붓자국이 나오는가 하는 말씀이신가요?

김 :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붓자국이 垂直(수직), 水平(수평)으로만 나타나는데 거기에 대한 근거는 무엇입니까?

이 : 「시간적 레벨에 의해서 존재가 가시화되는 것 아니냐」, 「그림이란 관념적으로만 지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그냥 보여주자」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명중해주자 하는 의도가 있었지요. 수평과 수직이라는 것은 공간의 신체개념입니다. 공간적 위상에서 수평은 대지, 수직은 생명 내재 정신을 뜻합니다. 수평이 물질적 구성체라면 수직은 정신적 상승체라는 조형적인 기본성이 있습니다.

김 : 수평선과 수직선을 그을 때 느낌의 차이가 있습니까?

이 : 수평이나 수직이나 대칭으로 그립니다. 붓이 움직이는 방향은 물론 다르지만, 각기 몸의 중심을 실어 그어 나갑니다. 대칭은 대개는 정신적 균형, 현상의 균형이랄까요. 그런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김 : 대칭이란 말은 평면에서 기준을 정해놓고 양쪽을 긋는다는 말씀입니까?

이 : 제 경우는 신체구조를 말합니다. 수직은 인간의 골격의 중심이라 할 척추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의 신체와 우주를 동일시하고서 우주의 중심과 나의 중심의 일치성을 추구하기 위해 대칭 개념을 씁니다.

김 : 사실 미니멀리즘에는 작품과 인간의 동형론(anthropomorphism) 개념이 있고 문인화에도 物我一體(물아일체)의 개념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이 : 미니멀아트에서의 동체 개념이나 신체 개념은 지각 대상으로서의 규정이지 생명이라든지 우주와는 거리가 멉니다.

김 : 현상적인 지각이나 인식의 차원은 배제하시는 것입니까?

이 : 배체하는 것이 아니고 통합하는 것입니다. 문인화의 경우 대칭성이 없다 하더라도 생명체를 다루게 되면 거기에는 균형(좌우균형과 공간적 균형)을 둡니다. 거기 등장하는 주제는 예를 들면 사군자와 같은 생명체입니다. 미니멀리즘에서는 볼 수 없는 정신성이 있습니다. 즉 정신과 생명의 일체성을 미니멀리즘에서는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회화의 목적, 미술의 목적 자체가 전통 문인화의 경우 정신의 고양을 추구한다면, 미니멀리즘의 경우 정신의 고양, 생명, 인격이라든지 하는 요소는 없습니다.

김 : 예를 들어 대상성의 부각 등 미니멀리즘에서 거론되는 지각적, 인지적 요소에 대해서 거부감을 가진다는 것입니까?

이 : 인식의 채널로서는 하나의 단계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단계를 분리시켰다는 데서 개념 미술의 신선함이랄까 명료성이 엿보이는 것은 인식 체계의 단계적 상황일 뿐이라고 봅니다.

김 : 그러니까 어떤 경험, 인식 너머에 그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상정하시는 말씀이지요?

이 : 그렇습니다. 그것이 제 작품에서 전체적으로 핵심이 되는 부분인데, 어떤 세계현상이라는 것이 상황으로 분리될 수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흐르는 세계이지 거기서 뭔가 분리해낼 수 있다는 생각은 논리적인 한 노력일 뿐일 것입니다.


김 : 동양적인, 문인화에서의 자연관이랄까 조형관을 받아들이고, 결국 거기서 나타나는 형상성, 생명성을 다루면서 그것을 정신성과 일체화시키는 과정을 인정하시면서도 선생님 작업에서는 그런 형상성이 빠져있고 생략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 까닭은 무엇입니까?

이 : 저는 전도관이 있는 곳에서 살았는데 그 종소리는 귀가 따갑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대학시절 우연히 들은 목탁 소리에서는 공명의 구조를 느꼈습니다. 그 목탁소리를 통해서 어떤 형태, 형상을 가진 구성체라는 것은 무엇이 주가 되고 객이 되는 관계가 아닌 공명의 구조라는 데 대해 공감과 자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주와 객이 서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울림을 당하는 세계라는 데에서 나는 형상을 형상화시키지 않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김 : 구체적인 형상에서는 그런 세계가 표현될 수 없다고 보십니까?

이 : 형상이라는 것은 찰나적이라는 것이 저의 관념입니다. 단지 인간의 눈이 그것을 뇌에 전달하는 것 뿐이라는 것이지요. 이는 형상은 찰나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동양적인 관념과도 일치합니다.


김 : 선생님의 작업에서는 현실적인, 현상적인 것을 초월한 초연한 세계가 엿보이기 때문에 현실적인 문제나 경험적인 문제와는 너무 거리가 있지 않느냐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앞서 언급하신 미니멀리즘에 관한 내용의 연장선상에서 문명적, 현실적 문제를 다루는 요즈음의 서구미술의 경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서구적 인식 체계에 대한 주체의식을 가지고 정신성, 초연함 등을 제시해 보이는 선생님의 작품 세계와 연결해서 말씀해 주십시요.

이 : 72년 백색세계를 제시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서구미술에 대해 문제점을 느끼고 있습니다. 서구의 경향이 경험론, 실증주의적인 것에 집착하는데서 다양한 것이 나타난다고 하지만 문제를 항상 현실 즉 눈에 보이는 세계 내에서 확인하고 느끼고자 하는 한계를 보았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은 어떤 정신의 지주가 되는 축의 상실, 말하자면 신화나 신을 폐기해버린 나머지 인간의 체험만 남아 있는, 인간적인 욕구나 해방을 추구했지만 목표를 잃고 방황하는 혼돈의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보여집니다. 최근의 경향은 더 극렬해 보입니다. 그러나 지금 서구미술의 일각에서도 놀랄 만한 인식의 변화가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우리가 거론하는 동양의 자연관과 일치하는 경향도 엿보인다는 것이죠.

김 : 미술이라는 것이 실제로 보여지고, 감상자를 생각해야 하는 등등,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데, 요즈음의 미술계의 상황, 후배들의 그림 등 국내의 현실에 대해서는 어떤 견해를 가지고 계신지요?

이 : 지금도 국내 미술의 상황은 서구의 이즘을 도입하는 과정의 연장이라고 봅니다. 다양하고 다원화된 욕구, 문화적 현상 등은 긍정적인 측면으로 보여집니다. 그러나 그러한 욕구가 해소되고 지적 충족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보다 자각적이고 주체적인 국면이 요청되는 심각한 상황에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남의 눈치를 너무 봐요. 그래서 보호색에 편승해야 안심하지요. 아니면 우격다짐의 편견에 물들기 쉽습니다. 작가는 남과 다른 자신을 발견하여 다른 길을 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 : 미니멀리즘에 대한 거부감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지만 그 이후의 혼합매체나 인스톨레이션의 유행, 복제이미지, 다양한 과학기술이나 테크놀러지 매체를 이용한 미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 너무 광범위해서 어려운데요. 감각 위주, 생산과 소비 위주의 현상으로 간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일런지 모르지만 분명히 문제는 있지요. 테크놀러지 문화 등은 재미있고 때로는 감미롭습니다. 그러나 인간을 해체하고 객체화함으로써 생명의 체온과 숨결의 신비는 느낄 수 없습니다. 인간을 뇌살시키는 온갖 소리에도 광막한 우주의 시원으로부터의 고요가 존재합니다.

김 : 사실상 서구 미니멀리즘이 상업주의에 대한 반발, 복제의 횡행이나 재현이 범람하는 현상에 대한 반발로 생겨났다는 긍정적인 시각도 있습니다. 현존성을 강조하는 등 사실상 거기에는 상업적인 요소를 무시하려는 노력이 없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서구에서도 그런 작업들이 퇴화하는 경향이 있고 사정은 국내 역시 마찬가지인데 이 점에 대해서 선생님은 어떤 비전을 가지고 계십니까?

이 :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하면 작가 역시 생산이 혜택을 받아야 살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러한 것이 작가의 사명, 운명이라는 측면과는 대치될 수도 있겠지요. 그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제 작업은 욕망의 끊임없는 사슬인 나로부터 벗어나 대자연의 통일체로 귀속함으로써 일체감을 맛보려는 것이었습니다. 현실의 실상은 그것에 너무 밀착되면 잘 보이지 않는 맹점이 있습니다. 동양의 관념세계는 현존에 구속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전 존재적 현상을 像(상)으로 제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니멀리즘의 퇴조를 말씀하셨는데 최근 서구인들도 반성적 시각을 갖는 징후로써 미니멀리즘이 세계를 꾸미지 않는 그 양식의 특성상 동양의 자연관과 공통점이 있고, 그래서 최근에 다시 조명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1세기 세계문화의 축이 이제 더 이상 서구적일 수만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 그렇게 보십니까? 어쩌면 그러한 관점에서 선생님의 작업을 조명해 볼 수 있겠고, 그런 정신성의 흔적, 자취를 고수한다는 측면에서 개성과 독자성을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앞으로의 작업 계획은?

이 : 아직 할 일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아무래도 아시아권 내에서의 활동이 세계무대에 인식되는 데에는 상당한 제약과 불리한 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정신의 상실이라는 것을 문제화하기 위해서도 계속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김 : 구체적인 활동 계획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이 : 올해 국내에서의 개인전과 함께, 최근 테이트 갤러리의 고문인 아담스씨로부터 「유럽에서는 볼 수 없는 회화」라는 매우 긍정적인 반응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영국에서의 전시계획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김 : 장시간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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