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택 (Hommage 100 전에 부쳐)

Critique 평론 2007. 6. 13. 10:46
박영택
미술 평론, 경기대 교수



이동엽은 동양인의 독특한 공간 개념인 여백을 화면 안으로 끌어들인다. 전통 산수화에서 여백은 산山과 수水의 사이로서 기氣가 통하는 장소이다. 그 여백의 사이는 음양의 기가 서로 교체되는 생기찬 공간인 곳이자 자연섭리를 중재하는 곳이다. 이른바 생성이 가능한 곳이자 모든 생명활동이 이루어지는 가시적/비가시적 영역이다. 음양의 부단한 교체, 즉 자연의 질서가 관조되는 곳이 다름 아닌 산수화에서의 여백인 셈이다. 이동엽이 화면 안에 붓질로 만든, 백색공간으로 점점 스며들어가는 짙은 선, 흔적들은 미묘한 풍경을 연상시킨다. 바로 그곳이 사유의 터전이자 일루젼이 발생하는 곳이며 의식의 관여가 가능한 공간이다. 이른바 산수화에 담긴 전통적 여백을 응용한 조형기법이다. 그는 이를 '회화적 여백'이라 부르는데, 그것은 공백 아닌 공백으로서 화폭 전체를 지배하는 구도의 축이 된다. 화면 속으로 아스라이 사라지는 붓자국만이 텅 빈 듯한, 흰색으로 가득 덮여 있는 공간에 섬세하게 흔들리고 있다. 작가에 의하면 그 그림은 자신을 비우는 것이고, 비워서 본질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한다.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캔버스 위를 마치 빗자루질로 정교하게 쓸고 나가듯이 흰색 붓질을 일정하게 반복해가는 작업을 통해 무엇을 그리겠다는 목적성을 거부하고 행위와 행위의 무수한 중첩 혹은 그 사이에서 생성되는 자연스러운 결과물을 작품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ref.
2007년 부산 코리아아트센터 개관 기념전 Hommage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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